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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9

데이비드 보위가 사랑했던 오디오

50년을 뛰어넘은 예술품, rr-226 Radiofonogra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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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보위가 사랑했던 오디오


2016년 1월, 데이비드 보위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영향력은 록 스타라는 표현에 가두기에는 너무 복합적이고 광범위했다. 그는 데뷔 이래 단 한 순간도 진부하게 살지 않았고, 40년 동안 언제나 새로움과 변신의 아이콘이었다. 늘 세상에 무언가의 방향을 진보적으로 제시했으며, 결국 음악과 함께 죽었다. 보위가 1997년 매디슨 스퀘어 가든의 50세 생일 공연에서 남긴 “지금부터 내가 어디로 갈지는 모른다. 하지만 지루하진 않을 것이라고 약속한다”는 말은 그의 삶 자체를 설명한다.


보위가 사망한 뒤 2016년, 영국의 미술품 옥션 회사인 소더비 경매에서 그의 유품 하나가 무려 257,000파운드에 팔렸다. 2016년 당시의 환율을 반영하면 한화로 약 4억5천만 원쯤 되는 가격이다. 


물론 세계적인 록 스타의 유품이라는 사실 자체로 당연히 프리미엄이 따르겠지만, 다른 사람이 아니고 데이비드 보위다. 매번 놀라운 파격으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유행을 선도했던 그의 선구자적 안목을 떠올려보면, 남긴 물건 하나하나가 주목 받으며 높은 가치가 매겨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날 낙찰된 보위의 유품은 라디오 턴테이블이다. 그가 ‘뮤지컬 펫(Musical Pet)’이라 부르던 애장품이었다. 이탈리아의 전자제품 브랜드 브리온베가(Brionvega)에서 1966년 생산된 히트작  ‘rr-126 Radiofonografo(이하 rr-126)’가 그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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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이 지나도 생생하게 살아 있는 오리지널의 힘


데이비드 보위의 애장품이었다니 대체 얼마나 무시무시한 슈퍼 오디오일지 궁금해질 것이다. 그러나 의외로 rr-126은 엄청난 스펙과 덩치를 자랑하는 하이엔드 시스템이 아니다.(보위가 생전에 애용했던 차도 럭셔리 카가 아닌 소형차 BMW 미니였다는 걸 떠올려보자) 턴테이블과 라디오, 스피커가 하나의 몸체에 들어 있는 일종의 올인원 오디오다. 그럼 이 소박한(!) 오디오의 어떤 점이 보위의 마음을 사로잡은 걸까. 


1945년 설립된 브리온베가는 성능뿐만 아니라 산업 디자인 측면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브리온베가의 제품 라인업을 둘러보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디자인의 원형을 마주하는 것 같아서 감탄이 나오는 걸 숨길 수가 없다. 어떻게 그 시절에 이런 감각적인 디자인이 나왔을까. ‘이 시대의 기준에서’라는 뻔한 수식어를 달지 않아도 눈을 쉽게 뗄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다.


그중 오리지널 rr-126이라는 명품을 만든 주인공은 이탈리아 출신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형제 피에르 자코모 카스틸리오니(Pier Giacomo Castiglioni)와 아킬레 카스틸리오니(Achille Castiglioni)다. 뉴욕현대미술관(MoMA : The Museum Of Modern Art)에서도 이들의 컬렉션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RR-126은 거의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출시되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RR-126의 21세기 업그레이드 버전에 해당하는 rr-226 Radiofonografo(이하 rr-226)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설계부터 디자인까지 전신인 RR-126의 모든 요소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이는 RR-126의 디자인이 50년이 넘는 세월에도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비슷한 것조차 찾아보기 힘든 유니크한 오리지널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유행을 따라 가볍게 재현된 레트로가 아니라 생생한 원형 그 자체의 힘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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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미소, 이동성, 그리고 스테레오


RR-126과 RR-126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외부 기기를 연결할 수 있는 AUX 단자가 추가된 것 정도다. 원래 2008년에 출시됐을 때는 CD 플레이어가 탑재돼 있었으나 오리지널의 콘셉트를 최대한 유지한다는 차원에서 그마저도 사라졌다. 기본 설계, 겉면의 나무를 깎고 알루미늄을 녹여 프레임을 만드는 등의 모든 제작 공정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옛날과 다를 바 없다.


RR-126의 처음 디자인될 때 세 가지 원칙이 있었다고 한다. 완벽한 미소, 이동성, 그리고 스테레오 사운드. 그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미소’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한가운데 위치한 메인 컨트롤러의 모양이 익살스럽게 웃는 사람의 표정(이모티콘 ‘^^’이 연상된다)처럼 만들어져 있다. 이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의 얼굴을 형상화한 디자인이다.


웃는 얼굴의 좌우에는 스테레오 스피커가 넓게 자리 잡고 있는데, 이들을 분리해서 이동 배치를 할 수 있는 것은 RR-226이 지닌 또 다른 고유의 개성이다. 기본적인 횡방향 설치 외에 블록처럼 콘트롤러 위에 쌓아서 정방형으로 구성할 수도 있고, 아예 멀리 떼어놓을 수도 있다. 스탠드 하단에 바퀴가 달려서 움직임이 자유롭다는 것까지 포함하면, 이동성과 공간 활용능력이 정말 탁월하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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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아득히 뛰어넘은 예술품


굳이 우선순위를 정한다면, RR-226이 귀로 듣는 즐거움보다는 눈으로 보는 쾌감 쪽에 좀 더 무게가 실려 있는 작품인 건 부인하기 힘들다. 그러나 이는 상대적인 비교일 따름이고, 하이엔드급 사운드에 귀가 철저하게 길들여진 사람이 아니라면 소리 역시 충분히 준수하다. 블루투스나 네트워크 등의 멀티미디어 기능은 없지만 AUX 입력을 활용하면 다양한 소스기기를 연결하는 것에도 불편이 없다. 


게다가, 이 눈으로 보는 쾌감이라는 게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 강렬하다. 기능을 위해 절제된 디자인이라기보다는 디자인이라는 흥미로운 놀이 자체를 즐기면서 만들었다는 인상을 준다. 거기에 장인의 노하우와 기술력이 더해졌으니 상품보다는 우아한 예술품의 영역에 포함시키는 게 더 어울린다. 물론 이를 향유하려면 천만 원대라는 적지 않은 비용은 필요하지만, 경제적으로 감당할 여력이 있고, 인생에서 예술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주저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완전히 물욕에서 초연해진 사람이 아니고서야, RR-226을 보고 ‘나도 저런 거 하나쯤 갖고 싶다’는 충동이 머리를 스쳐가지 않는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 시대를 뛰어넘어도 아득히 뛰어넘어서 현대의 사람들이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그 시절에 이미 구현한 것이다. 데이비드 보위가 매료된 이유가 다 있다. 



Editor_최승우

swchoi@dnolt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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