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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9

BOOK 만화, 느와르의 조건을 말하다 (1)

가장 중요한 것은 숙명론적 비극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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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와르(noir)는 프랑스어로 ‘검다’ 혹은 ‘검은 색’이라는 뜻이다. 하나의 서브컬처 장르처럼 알려져 있지만, 사실 느와르라는 장르를 딱 잘라 단정하는 공식적인 정의는 없다. 말하자면 장르보다는 어떤 특유의 분위기나 성향에 가깝다. 관용어처럼 흔하게 쓰이지만, 정의하면 할수록 오히려 광범위해지고 애매해진다. 


다만 느와르에 대한 관습적인 요소나 일정한 이미지는 있다. 어둡고 허무하며, 선악과 도덕적 딜레마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고, 주인공이 대체로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보통 느와르 하면 총과 담배가 빠지지 않는 갱스터를 떠올리는데, 이는 범죄물이 앞서 말한 느와르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느와르는 범죄물이 될 수도 있고, 전쟁이나 스릴러, SF가 될 수도 있다.  


예전에 박찬욱 감독은 자신의 평론집에서 “느와르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총격전도 범죄도 아닌, 숙명론적 비극”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느와르를 스타일 아닌 주제면에서 가장 적절하게 정의한 것이 아닐까 한다. 지금부터 다룰 작품들은 그런 숙명과 비극의 서사가 다양한 방식으로 녹아 있는 만화들이다. 



탐미적이고 스타일리시한 형사 느와르

<콤비네이션>, 클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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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시게미는 늘 빙글빙글 웃으며 만담을 늘어놓는 인물이지만, 그에게는 파트너가 자기 대신 살해당했던 과거가 깊은 생채기로 남아 있다. 속을 알 수 없는 가벼운 행동으로 사람들을 멀리하는 한편, 파트너를 죽인 거대 범죄조직과의 싸움에 단신으로 나서는 그는 마치 자폭 직전의 폭탄처럼 아슬아슬하다. 그런 그에게 새로운 파트너, 과묵하고 고지식한 후배 사사키의 존재는 낯선 기습이다. 


<콤비네이션>은 90년대 이름 석 자를 휘날렸던 만화창작집단 클램프(CLAMP)의 작품 중에서 보기 드문 현대물이다. 기본적으로 전형적인 버디 형사물의 포맷을 따르고 있는 한편 도회적인 느와르의 감성이 흐르는 작품이다. 사실 클램프는 아이돌 기획사만큼이나 철저한 분업과 기획으로 만화를 창작하는 팀이다. 인기를 끌 만한 요소를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그것을 절묘한 밸런스로 나누어 실패하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한다. 거의 모든 작품의 기저에는 탐미적인 암울함과 기묘한 동성애 코드가 깔려 있고, <콤비네이션> 역시 이런 기획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다만 클램프의 다른 작품들이 대개 판타지나 신화적 상상력에 기반을 둔 걸 감안하면, <콤비네이션>은 어느 정도 특이한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용두사미의 결말로 혹평을 듣기도 했고, 국내에서는 흔한 리뷰는 고사하고 흔적조차 찾기 힘든 마이너한 작품이지만, 느와르라는 테마에는 잘 들어맞는 만화 되겠다. 



어느 연약한 소년의 행복한 죽음

<바나나 피시>, 요시다 아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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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D. 샐린저의 소설에서 제목을 빌려온 만화 <바나나 피시>를 요약하자면, ‘오만 가지 개고생을 하던 주인공이 행복의 문턱을 끝내 넘어서지 못하는’ 비련의 스토리 되겠다. 애쉬 링크스는 ‘불행’이라는 단어에 팔다리 붙이고 옷 입혀놓은 듯한 캐릭터다. 그는 부모에게 버림받았고, 8살 때 강간을 당하고 생애 첫 살인을 했으며, 키즈 포르노의 제물로 쓰이다가 나중에는 뉴욕 뒷골목을 장악하는 소년 갱단의 리더가 되었다. 부모 대신 그를 키워준 형은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마약으로 폐인이 된 끝에 죽었다. 


작가는 애쉬에게 눈부신 미모와 IQ 180의 머리, 카리스마, 천부적인 사격재능과 싸움실력 등 ‘초인’에 가까운 능력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작품 내내 세상은 한 번도 그의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 이름 그대로 살쾡이(lynx)처럼 발톱을 세우고 살아온 애쉬가 자신이 내면을 보여준 건 일본인 친구 에이지가 유일히다. 결국 애쉬는 사투 끝에 자신을 속박하던 모든 상황에서 벗어나고, 그토록 바라던 자유를 얻는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서, <바나나 피시>는 팬들을 그야말로 충격과 경악에 몰아넣었다. 애쉬는 에이지의 편지를 읽고 행복해하며 돌아서는 순간, 별것 아닌 적의 평범한 공격에 당한다. 그는 피 묻은 편지 위에 엎드린 채 행복하게 웃으며 죽는다. 슬프지만 더 이상 적절할 수 없는 결말이기도 해서, 그 잔상은 한 컷의 그림처럼 오래도록 남는다. 



비애 섞인 거대한 스페이스 느와르

<덴마>, 양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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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 ‘캐릭터가 살아 돌아다니는’ 신기한 경험에 대해 몇 차례나 이야기한 바 있다. 원래 비슷한 패턴이 반목되는 전형적인 소년만화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연재 도중 예정에 없던 캐릭터들의 사연이 자꾸 튀어나와 마구 확장되더라는 것이다. 그 덕분에 이 만화는 스케일 큰 우주 서사시에 건조한 비애가 뒤섞인 형상이 되었다. 


<덴마>는 커다란 스토리의 줄기에서 독립된 이야기들이 가지를 쳐 나가는 구조다. 시간순서를 역행해서 배경을 설명하고, 그러다가 다시 메인 스토리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각각의 챕터마다 무대의 뒤로 조용히 사라지는 캐릭터가 있다. 그들은 모두 아름답지만 연민이 느껴지는 황혼을 등에 지고 있다. 자신이 지켜온 가치와 신념에 스스로 갇히는 사람, 살기 위해 죽음을 택한 사람, 혹은 행복을 눈앞에 두고도 쓸쓸히 돌아서는 사람. 특히 ‘우주 최강의 또라이’ 이델, ‘철견무적’ 아비가일의 에피소드는 강한 페이소스를 남긴다. 덴마는 이 모든 것의 주인공이면서 관찰자, 주변인이 된다. 


이 거대한 스페이스 느와르는 장기간 휴재와 연재를 되풀이하고 있는 상태다. 팬들은 행여나 <덴마>가 양영순의 전작들처럼 연재 중단이라는 ‘숙명적 비극’을 맞을까, ‘믓시엘!’을 부르짖으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제발 무사히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다. 



Editor_최승우

swchoi@dnolt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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